정치 이슈 커질수록 공장 오염도 늘었다… KAIST, ‘제도적 혼잡’ 메커니즘 실증

KAIST·싱가포르경영대 공동 연구팀, 미국 제조시설 1만4390곳 분석
이민 법안 1건 증가 때 시설당 독성물질 배출량 평균 1% 증가

▲ 이나래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KAIST 제공

정치권에서 특정 현안이 부상할수록 정부의 환경감독이 약화되고 기업의 독성물질 배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치적 의제 경쟁이 한정된 행정력과 예산을 끌어가면서 환경감시 공백을 만든다는 분석이다.

KAIST는 기술경영학부 이나래 교수와 싱가포르경영대학교 헬리 왕 교수 공동 연구팀이 미국 전역의 이민 관련 입법과 환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민 이슈가 정치적 핵심 의제로 부상할수록 정부의 환경감독이 약화되고 제조시설의 독성물질 배출이 증가하는 현상을 규명했다고 10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 현상을 ‘제도적 혼잡’으로 설명했다. 정부의 행정력과 예산은 한정돼 있어 새로운 정치 현안이 등장하면 정부 관심과 자원이 해당 분야에 집중되고, 그 과정에서 환경감독처럼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정책 분야의 집행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미국 환경보호청의 독성물질배출목록과 미국 각 주의 이민 관련 입법 데이터를 결합해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전역 제조시설 1만4390곳에서 수집된 총 8만2377건의 데이터다.

분석 결과 이민 관련 법안이 한 건 증가할 때마다 제조시설 한 곳의 독성물질 배출량은 평균 약 1% 증가했다. 이는 공장 한 곳당 약 25kg, 56파운드의 독성물질이 추가 배출되는 수준이다.

연구팀은 독성물질 배출 증가가 환경 규제 기준 완화 때문은 아니라고 봤다. 정치적 관심과 행정 자원이 이민 이슈로 이동하면서 정부의 환경감독이 상대적으로 느슨해졌고,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비용이 많이 드는 오염 저감과 독성 폐기물 처리 노력을 줄였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현상은 지방정부의 재정 여건이 나쁠수록 더 뚜렷했다. 부채가 많거나 재정 부담이 큰 주에서는 정치적 관심이 새로운 현안으로 쏠릴 때 환경감독 약화 정도가 더 컸다. 예산이 부족할수록 정치적으로 시급한 의제에 자원이 먼저 배분되고, 환경감시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나래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이민이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제의 변화가 환경감독을 약화시켜 기업의 오염을 늘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정부의 한정된 자원이 특정 이슈에 집중되더라도 환경감독은 흔들리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정치적 의제 경쟁이 기업의 환경오염 관리에 미치는 영향을 대규모 데이터로 실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환경오염의 부담이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환경 정의와 공공정책 설계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평가다.

연구 결과는 이 교수가 제1저자로 참여해 경영학 분야 학술지 ‘저널 오브 매니지먼트’에 5월29일 온라인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포스코 기업시민연구상, 미국경영학회 로버트 릿처트상, 전략경영학회 우수논문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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