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진의 ‘신경전(全)’] ‘갑자기’ 기억이 사라지는 시간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던 중 중년의 건강하던 여자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여기가 어디냐고 반복해서 물어본다. 대답을 해주면 알아듣는 듯 하더니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한다. 대화가 되는듯 하지만 계속 비슷한 내용을 물어보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왔는데, 응급실에 온 후 서서히 기억을 찾는 모습이다. 그러나 본인이 이런 증상이 있었다는 사실과 응급실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기억을 하지 못한다.


▲ 오여진 소중한메디케어 신경과 과장


위의 사례와 같이 갑자기 필름이 끊기는 일이 발생하여 병원에 오는 분들이 있다. 술을 먹은 것도 아닌데 비디오 편집해서 잘라내 듯 특정 몇시간의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 상실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이런 단기간의 갑작스러운 기억상실 증상은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증’ 이란 질환의 가능성이 높다.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증은 평소 기억력 문제가 없이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던 사람이 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이 갑자기 기억 상실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증상은 5~6시간정도 지속되며 보통 12시간 이내로 호전이 된다. 증상은 갑자기 발생하며, 환자는 그 기간 동안의 일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 시간 동안은 기억의 ‘입력’ 기능이 정지되어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지 않는 ‘전향적 기억상실’이 나타난다. 어떤 경우는 가까운 과거 일들 중 일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후향적 기억상실’이 동반되기도 한다. 과거의 기억은 기억상실증상이 호전되면 다시 기억을 하지만, 증상 발생 기간 동안의 일들은 계속 기억하지 못한다.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에는 기억력 장애 외에 다른 이상소견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얼핏 보면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가까이서 이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지켜보면 횡설수설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로 본인이 있는 현재 장소가 어디인지, 여기에 왜 있는지 등의 질문을 반복적으로 한다. 대답을 해주어도 기억하지 못해서 방금 했던 질문을 다시 또 반복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본인은 본인의 증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껴서 병원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으며, 증상이 발생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오는 경우가 많아 병원에 오는 중 증상이 호전되거나 병원에 내원 후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진찰 상 이상이 없고 본인은 그 시간 동안의 기억이 없기 때문에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단에 가장 중요하다. 특이한 점은 많은 환자에 있어서 과격한 운동, 심한 불안, 우울 등의 육체적 또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증상 발생 직전에 선행되는 경우가 있다.


이 병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뇌의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라는 부분의 뇌혈류 장애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런 경우 MRI 촬영을 해보면 해마에 아주 작은 뇌경색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MRI에서 이상이 없는 경우도 있으며, 이런 경우는 뇌전증, 편두통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증상이 24시간 이상 지속되거나 다른 신경학적 이상이 동반될 경우 뇌파검사, 뇌척수액 검사 등이 필요할 수 있다.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은 후유증을 남기지 않으며 치매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질환의 특별한 예방법은 없으나 평소 고혈압, 당뇨와 같은 혈관 질환의 위험인자를 줄이고 과격한 감정적 혹은 육체적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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