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샘´s Diary] 보건교육의 신나는 효과

수 년 전, 이 학교에 처음 부임하였을 때 일이다.


갑자기 웬 키 큰 남학생이 미닫이 문이 열렸다 다시 닫힐 정도로 세차게 보건실 문을 열더니 도포 자락(셔츠 단추를 풀어 헤친 나름의 멋 부림)을 휘날리고 들어서며 하는 말,


“선생님! 진통제 좀 주세요!”


▲ 박희진 서울지향초등학교 보건교사


‘나 ㅇㅇ 보건교사는, 1차 보건의료인으로서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약물오남용 1위 국가라는 수치스러운 타이틀을 없애는 데 가장 중요한 1인이다.’는 나름 비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던 나를 도발하는 순간이었다.


욱~ 올라오는 성정을 누르며 친절한 보건샘은 이렇게 말했다.


“왜애~? 어디가 아픈데?”


이야기인즉, 머리가 아프니 빨리 진통제나 내놓으라는 말이 전부였다.


결국, 그 학생은 ‘예전 선생님은 달라는 대로 잘만 주던데 선생님은 왜 안주시냐’는 툴툴거림을 남기며 아무 소득도 없이 보건실을 나가야 했다.


그때부터 나의 목적과 방향성이 있는 약물오남용 교육은 시작되었다.

매년 실시했던 5, 6학년 보건수업에 반드시 약물오남용 예방 영역을 교육하였고, 우리나라가 왜 약물오남용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지,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며, 집에 가서는 부모님을 어떻게 인식시켜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이들이 보건실에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상당수는 플라시보조차도 필요치 않은 인식개선이 먼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건교사가 된 이후 소신껏 일해 왔던 터라, 새 학교에 와서도 이렇게 해도 될까? 하는 불안감에 어느 날은 교장선생님과 얘기했다.


소신과 민원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데, 어떡할까요? 물었더니, 훌륭하신 교장선생님께서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소신대로 하세요!”라고 지지해 주셨고, 그 뒤로 나의 약물오남용 잔소리는 거침없이 소신대로 진행됐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보건실에는 꾀병이 아닌 진짜 환자만 방문하도록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더 나아가, 약물오남용 교육은 소화기계 파트와도 확장 연계수업이 되었다. 흔한 복통의 여러가지 케이스를 통해 원인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보고 진단을 내려본 후, 왜 약을 먹을 필요가 없고 화장실을 가야 하는지, 변비도 아닌데 배는 왜 아픈지 등등에 대한 보건수업을 지속적으로 실시한 결과, 무릎을 탁 치는 즐거운 교육의 효과를 발견한 날의 보람과 쾌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보건실에 여럿이 우르르 몰려들어 오더니, 배가 아프단다. 문진과 촉진 결과는 뻔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학생을 쳐다보고 물었다.


“선생님이 지금 뭐라고 할 거 같으냐?”


애들이 합창으로 답했다.


“화장실 가라고요!”


곧바로 한 학생이 친구 머리를 쥐어박으며 으쓱대며 말했다.


“거 봐~~ 내가 뭐라고 했냐! 우리 그때 배운 거 있잖아!”


짜식들......대견하고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렇게만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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