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재돈의 한방톡톡] 한약 속에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다?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한약에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나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대부분 치료중인 병원의 의사가 한약을 복용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환자에게 겁을 주거나 혹은 본인이 처방한 약에 스테로이드가 있는 경우, 한약에도 스테로이드가 들은 건 같으니 차라리 이 처방을 복용하라는 논리이다.


▲ 구재돈 경희샘한의원 원장


이런 왜곡된 악순환은 사실 스테로이드가 무조건 나쁜 약이라는 오명에 대한 반작용이 불러온 상황이 아닌가 싶다.


과연 한약에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는 걸까?

스테로이드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확한 정의를 아는 경우는 적다. 약리학적으로 스테로이드라는 것은 스테롤, 담즙산, 성호르몬 등의 스테레오핵을 가진 지방화합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스테로이드라는 말이 붙은 화합물이라도 모두 다 스테로이드라고 칭하는 약용 성분이 아니고, 이중에서 단백동화 스테로이드(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부신피질호르몬(글루코코르티코이드 스테로이드)만이 스테로이드호르몬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선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를 의미하며 단백질과 골밀도를 늘리는 역할을 하는 스테로이드제를 말한다. 흔히 운동선수들이 도핑하는 약들이 이것이다.


테스토스테론, 난디롤론, 스타노조롤, 옥산드롤론 등등이 대표적인 도핑 약물이다. 같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이지만 당질 코르티코이드는 단백질합성을 막는 작용을 하는 것이므로 기전이 정반대의 약이다.

흔히 스테로이드약이라고 하는 것은 부신피질호르몬제인 당질 코르티코이드이다. 염증을 억제하는 작용이 매우 뛰어나서 감기와 같은 흔한 호흡기염증, 관절염 같은 관절질환부터 크론병이나 궤양성대장염, 루프스 등의 면역계질환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흔히 아토피피부염에 처방되는 스테로이드제는 부신피질호르몬제에 해당한다.


한약에 스테로이드제가 들어 있다는 말이 진실이려면 아나볼릭스테로이드나 당질코르티코이드가 들어 있어야만 한다. 자연계 식물내 성분 중 스테로이드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것들은 가지, 마, 도라지, 콩 등으로 매우 많다. 이것들을 보통 식물성스테로이드나 식물성스테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것은 성분명에 스테로이드핵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스테로이드로의 작용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약같은 자연계 식물 성분 중 스테로이드 호르몬제과 같은 것은 없다.

의사들이 ‘한약에 스테로이드성분이 들어 있다’ 라고 쉽게 말하는 이유는 한약에 대한 약리적인 작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교육을 받은 결과이다.


이런 오해의 시작은 바로 ‘감초’ 때문이다.


감초의 주성분인 글리시리진(glycyrrhizin)을 과량 복용했을 경우 부신피질호르몬제를 복용한 것과 비슷한 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약리적으로 살펴보면 감초의 글리시리진은 몸속에서 glycyrrhetic acid로 전환돼 11-베타하이드록실레이즈라는 효소의 작용을 방해한다. 11-베타하이드록실레이즈가 스테로이드를 분해하는 작용을 하므로, 효소작용이 방해를 받으면서 체내 스테로이드 분해가 저하되고 혈중 스테로이드 농도가 높아지는 ‘감초 유발성 위알도스테론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감초 유발성 위알도스테론증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발생하기가 매우 어렵다. 약리적으로 연구된 바에 의하면 감초가 위알도스테론증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하루 50g을 6주 이상 복용해야 하는 양이다. 일반적으로 한약에 감초를 사용할 경우 8g이고 많아봐야 최대로 처방해봐야 15g인 이다.


결국 감초에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다는 것도 아니고, 다량 섭취했을 때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한 것과 유사한 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것뿐이며, 통상적인 한약 처방에서는 그 용량 정도로 절대 처방하지도 못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한약에는 부신피질호르몬제에 해당하는 스테로이드성분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또한 한약에 스테로이드제가 들어 있다는 오해를 불어 일으키는 감초 역시도 스테로이드제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며 위알도스테론증을 유발할 정도 수준의 양을 처방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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